【우리일보 김은기 기자】 "잘 지내셨어요?" "그럼, 기다렸지. 오늘도 머리 예쁘게 해줘요"

추석을 앞둔 지난 10일 오전 인천 남동구 만수동 만월쉼터. 신천지 자원봉사단 남동지부(이하 남동지부, 부지부장 김기하) 봉사자가 안부를 건네자 어르신이 웃으며 답했다. 쉼터 안에는 가위질 소리와 드라이기 바람 소리, 어르신들의 대화 소리가 뒤섞였다. 먼저 온 어르신들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고, 봉사자들은 익숙한 얼굴을 발견할 때마다 안부를 물었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한참 들여다보던 김영수(가명·86·남) 씨의 얼굴에도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정갈하게 다듬어진 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기며, 그는 추석에 찾아올 자녀들 앞에 말끔한 모습으로 서고 싶었다고 했다. 김씨에게 남은 건 머리 손질만이 아니었다. 매달 봉사자들과 나눈 커피와 삶은 계란, 한겨울 건네받았던 호빵을 하나씩 떠올렸다. 고마운 마음에 봉사자에게 돈을 건네려 한 적도 있었지만, 봉사자들은 끝내 받지 않았다.
만월쉼터 이미용봉사는 김씨의 요청에서 시작됐다. 남동지부가 다른 장소에서 이미용봉사를 하던 당시, 이를 이용하던 김씨가 "만수동에도 와달라"고 요청한 것이 계기였다. 그 요청 하나가 1년째 이어지는 정기봉사가 됐다.
박순자(가명·78·여) 씨에게는 매달 정해진 날짜에 머리를 손질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도움이 된다. 따로 미용실을 찾지 않아도 되는 만큼, 이날을 기다려 일정을 맞춘다고 했다.
최정호(가명·80·남) 씨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줬다. 처음엔 낯설던 봉사자들과의 만남이 매달 반복되면서, 지금은 안부를 묻고 근황을 나누는 사이가 됐다고 했다.
이미용 봉사자 이정희(가명·65·여) 씨도 그 1년을 함께해 왔다. 과거 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하다 코로나19로 활동이 중단된 뒤 다시 연락을 받고 참여하게 된 이씨는 "봉사하는 것도 너무 재미있고 행복하다"며 "기다렸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매달 얼굴을 마주하면서 어르신들과 나누는 대화도 처음보다 편안해졌다고 했다.
◆ 도움받던 손에서 돕는 손으로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들어섰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5년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전체 인구의 20.3%다. 혼자 생활하는 어르신이 늘면서 미용실 방문처럼 사소해 보이는 외출조차 부담이 되는 경우도 함께 늘고 있다. 만월쉼터의 이미용봉사는 이런 일상적 공백을 채우는 지역 단위 대응 사례 중 하나다.
활동은 만월쉼터에만 머물지 않는다. 신천지 자원봉사단 인천지역연합회(연합회장 이석구)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 동안 인천 지역 7개 지부는 148일간 66곳에서 활동하며 봉사자 1,375명이 3,229명의 어르신·주민과 만났다. 이미용봉사는 연합회가 운영하는 환경정화·보훈나눔·벽화 등 8개 봉사 유형 가운데 하나로, 인천지부·서인천지부·계양지부를 비롯한 여러 지부가 매달 어르신들의 머리를 손질하고 있다. 남동지부의 만월쉼터 활동도 이 가운데 하나다.
1년 가까이 쌓인 만남은 미용봉사 자리에만 머물지 않았다. 이미용봉사를 이용하던 주민 일부는 이후 인근에서 열린 환경정화 활동에 봉사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 소식을 들은 봉사단의 다른 어르신 봉사자들은 추석을 앞두고 손뜨개 복주머니를 만들었다. 찰떡을 담은 복주머니는 이날 머리를 손질한 어르신들에게 전달됐고, 어르신들은 만월쉼터에 마련된 추석맞이 포토존에서 손끝으로 복주머니를 받아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남동지부는 앞으로도 만월쉼터에서 월 1회 이미용봉사를 이어갈 계획이다. 김기하 남동지부 부지부장은 "추석을 앞두고 어르신들과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어 뜻깊다"며 "한 어르신의 요청에서 시작된 이미용봉사인 만큼 앞으로도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지역에 필요한 봉사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