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4일, 가톨릭 전례력은 구원 신비의 핵심인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을 지낸다. 4세기 헬레나 성녀가 예루살렘의 땅속 깊은 어둠 속에서 진실의 나뭇조각을 발굴해 올렸고, 헤라클리우스 황제가 페르시아의 약탈로부터 이를 되찾아 예루살렘으로 회복해 모셨듯, 교회가 십자가를 높이 들어 올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단순한 목재나 잔혹한 사형 틀이 아니라 세상의 온갖 모순과 죄악을 치유하는 ‘사랑과 반전의 깃발’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2026년의 현실은 형체만 다를 뿐, 또 다른 형태의 불 뱀과 사자 굴, 그리고 비정한 진영 논리의 광기로 가득 차 있다. 십자가의 참된 역사와 그에 비추어 본 현 시대의 순례 여정을 짚어보고, 신앙인과 현대인이 찾아야 할 진정한 안식의 길을 모색해 본다.
1. 십자가의 역사적 역설: 처형 틀에서 구원의 이정표로
본래 로마 제국 시대의 십자가는 반역자와 탈주 노예의 숨통을 끊던 가장 잔혹하고 수치스러운 사형 도구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를 비우시어(Kenosis)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이 수치의 나무는 ‘세상을 구원한 승리의 목재’로 대반전을 이루었다.
역사 속에서 십자가는 종종 인간의 욕망에 의해 오용되기도 했다. 십자군 전쟁이나 제국주의 침략, 민족적 제노사이드의 현장에서 십자가는 자비의 상징이 아닌 정복과 학살의 명분으로 왜곡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그 모든 인간적 오염과 세속의 파도 속에서도 교회가 지켜낸 참십자가의 본질은 변함없이 "나를 비워 남을 살리는 희생과 화해"였다.
2. 현대의 정치적 광기와 '제노사이드적 세태'의 참상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칼과 창을 들지만 않았을 뿐, 영적으로는 ‘제노사이드(집단말살)의 시대’를 방불케 한다.
양당 정치의 극단화와 진영 논리는 상대를 타협과 존중의 대상이 아닌, ‘반드시 말살하고 지워버려야 할 적’으로 규정한다. 언론과 미디어는 혐오를 생산하고, 가짜 뉴스와 조급한 분노는 사회적 독소가 되어 이웃 간의 신뢰를 무참히 파괴하고 있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아웅산 수치 여사가 정치적 입지와 진영 논리에 갇혀 로힝야족의 슬픈 제노사이드를 외면했던 비극처럼, 오늘날 현대인들 역시 자신의 정치적 색깔과 이익에 눈이 멀어 타인의 존엄성과 상처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는 이 극단적 배척이야말로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영적 제노사이드다.
3. 순례의 여정: 십자가를 바라보는 시선의 전환
광야에서 불 뱀에 물려 죽어가던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가 들어 올린 구리 뱀을 바라볼 때 치유되었듯(민수 21,9), 정치적 불신과 혐오의 독에 중독된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것 역시 ‘시선의 전환’이다. 우리가 지고 가는 삶의 무거운 짐과 사회적 갈등은 도피해야 할 불행이 아니라, 우리가 정면으로 직시하고 회개해야 할 현장이다.
상대의 십자가를 품는 용기: 내가 속한 진영의 이익만을 좇는 가짜 우상을 부수고,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의 고통과 십자가를 함께 짊어지는 겸손이 필요하다.
비움의 리더십: 바오로 사도가 묵상했듯(필리 2,6-11), 권력과 지위를 쥐고 흔드는 강함은 세상을 파멸로 이끌지만, 스스로를 낮추고 진실에 순종하는 십자가의 약함이야말로 세상을 부활시키는 진짜 힘이다.
4. 현세의 진정한 십자가 안식
미래에 대한 불안과 정치적 정쟁의 피로감 속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진정한 안식은 ‘세속의 승리’가 아닌 ‘십자가 아래에서의 평화’다. 십자가의 안식은 세상의 문제를 피해 도망치는 소극적 휴식이 아니다. 세상의 거짓과 폭력 앞에 당당히 맞섰던 예언자 다니엘의 지혜처럼, 진실과 사랑의 편에 서서 세속의 우상을 파헤치는 ‘능동적(active) 신뢰’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을 맞아 가슴속에 솟아오른 십자가를 깊이 바라본다. 양당 정치의 광기와 세상의 배척 속에서도, 십자가 위에서 세상을 향해 팔을 넓게 벌리신 그리스도의 사랑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각자의 삶에서 진영 논리의 칼날을 거두고 사랑과 희생의 십자가를 지고 걸어갈 때, 지금 우리가 밟고 있는 이 피로한 순례의 길은 마침내 구원과 안식의 거룩한 땅으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