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일보 서울=강수선 기자】헌법재판소가 비례대표 의석 배분 기준인 이른바 ‘3% 봉쇄조항’에 대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 이는 표의 등가성을 회복하고, ‘정치적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정당화되어 온 소수 정치 세력에 대한 구조적 차별과 민의 왜곡을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다는 헌법적 선언이다.
비례대표 제도의 본질은 정당이 획득한 득표율에 비례하여 의석을 배분하는 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 봉쇄조항은 소수 정당을 지지한 유권자들의 표를 사실상 사표로 만들며,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선거의 원칙과 표의 등가성을 심각하게 훼손해 왔다. 단 몇 소수점의 차이로 어떤 표는 의석으로 전환되고, 어떤 표는 완전히 배제되는 현실은 투표 가치의 왜곡을 넘어 민주주의의 정당성 자체를 위협하는 문제였다.
그동안 정치권은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이 국회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른바 ‘정치적 효율성’ 논리를 앞세워 이 제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이번 결정을 통해, 국정 운영의 편의보다 다양한 민의를 충실히 반영하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정당성이 훨씬 우선하는 헌법적 가치임을 분명히 했다. 이는 우리 민주주의가 정치적 다양성과 다원성을 감당할 만큼 성숙했음을 확인한 판단이기도 하다.
특히 이번 결정은 3% 봉쇄조항을 방패 삼아 거대 양당이 반복해 온 위성정당 정치와 소수 정당에 대한 구조적 종속 관행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비례성 강화라는 시대적 요구를 외면한 채, 위성정당이라는 편법적 수단을 통해 의석을 극대화하고 소수 정치 세력의 독자성과 정치적 가치를 훼손해 왔다. 원내 진입의 절박함을 이용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대변하는 정치 주체들을 흡수·종속시키는 행태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었다.
거대 양당은 소수 정당을 의석 계산의 도구로 전락시키며 민의를 왜곡해 온 정치 행태에 대해 깊이 성찰해야 한다. 이번 헌재 결정은 더 이상 거대 양당이 정치적 힘의 비대칭을 이용해 정치적 다양성을 거세하고, 소수 정치 세력을 하위 파트너처럼 취급하는 관행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경고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이번 결정이 여성, 청년, 소수자 등 그동안 제도 정치에서 배제되어 왔던 목소리들이 각자의 이름과 가치로 정치의 전면에 나설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국회는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를 충실히 반영하여, 비례대표 봉쇄조항을 포함한 선거제도 전반을 재검토하고, 표의 가치가 온전히 반영되며 정치적 소수자의 참정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제도 개혁에 즉각 착수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