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최근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청구한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이만희 총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에 의해 발부되어 구속수감 상태로 전환된 사건은, 대한민국 사법 행정의 역사와 형사소송 원칙에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일보·우리방송이 수많은 사법 현장을 취재하며 확인한 법치주의의 대원칙은 확고하다.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며, 정당 제도의 기틀을 훼손했거나 위법 행위가 존재한다면 그 어떤 종교지도자나 집단이라 할지라도 엄정한 사법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번 구속수감 조치를 바라보는 기자의 시각에는 깊은 우려가 자리 잡고 있다. 형사사법 체계에서 인신구속은 결코 확정되지 않은 혐의에 대한 '사전 형벌'이 아니며, 대중의 공분을 가라앉히기 위한 사법적 포퓰리즘의 도구가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형사소송법이 규정하는 인신구속의 요건은 주거부정, 그리고 '도주 및 증거인멸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우려'가 있을 때로 극히 제한된다. 불구속 수사와 재판이 원칙이며, 구속은 명백한 예외적 강제처분이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냉정하게 물어야 한다. 1931년생으로 올해 만 95세에 달하는 초고령의 피의자가 과연 국가의 삼엄한 감시망을 뚫고 도주할 실질적 위험이 존재하는가. 지팡이에 의지해야만 겨우 걸음을 옮길 수 있는 노인이, 주거가 명확히 확정된 상태에서 은신하거나 망명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증거인멸의 위험성 역시 마찬가지다. 수사당국은 이미 수차례에 걸친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통해 관련 장부와 디지털 포렌식 자료 등 혐의 입증을 위한 핵심 증거들을 대거 확보한 상태다. 인적·물적 증거가 이미 사법당국의 손에 들어간 상황에서, 수감되지 않은 95세의 피의자가 어떤 방법으로 증거를 인멸할 수 있다는 말인가. 결국 '실질적 위험성'이 결여된 상태에서의 구속수감은 형사소송법의 본질을 넘어선 공권력의 과잉 행사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대한민국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때 반드시 '과잉금지의 원칙(비례의 원칙)'을 준수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목적이 정당할지라도 수단은 적합해야 하며, 피해는 최소화되어야 하고, 법익의 균형성이 맞아야 한다.
구속 수사가 아니더라도 정기적인 출석 요구, 주거 제한, 혹은 구속영장 실질심사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대체 처분을 통해 수사와 재판을 원활히 진행할 방법은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체의 자유를 전면 박탈하여 구치소에 수감한 것은 과잉금지의 원칙 중 '침해의 최소성'을 명백히 간과한 처사다. 과거 가정연합 한학자 총재의 사례 등에서도 보았듯, 초고령자에 대한 무리한 구금은 지병 악화와 신체적 침해 등 돌이킬 수 없는 인권적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법률적 책임을 묻는 것과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을 박탈하는 것은 엄연히 구별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20조 제1항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8조 정당의 설립과 활동의 자유 보장 및 민주적 기본질서 확립.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와 정당 제도의 가치는 다원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정교분리의 핵심은 국가가 특정 종교에 특혜를 주지 않는 것만큼이나, 대중적 여론이나 종교적 편견에 휩쓸려 특정 소수종교를 적대하거나 지도자를 '본보기식 처벌'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것에 있다. 엄정해야 할 사법 권력이 여론의 엄벌 요구에 밀려 구속 요건을 자의적으로 느슨하게 적용한다면, 이는 곧 법치주의의 퇴행을 의미한다.
우리일보가 정론직필의 현장에서 언제나 '균형 잡힌 시각'과 '헌법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여겨왔다. 죄가 있다면 법의 심판대 위에서 철저히 유무죄를 가려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은 철저히 객관적인 법리와 과잉금지의 원칙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사법 권력의 진정한 품격은 칼을 휘두르는 위세가 아니라, 그 칼을 다루는 엄격한 절제와 헌법 수호의 의지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사법당국이 대중의 감정적 비난이 아닌, 냉철한 사법적 원칙 위에서 이번 사건을 다시금 엄중히 다루기를 기자로서 계속해서 지켜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