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일보 김은기 기자】나는 1950년 열넷 나이에 학도의용군으로 6·25 전쟁에 참전했다. 당시 낙동강 전선에서 총을 든 이유는 명확했다. 인민군 치하처럼 정당한 절차도 없이 여론과 선동으로 사람을 죄인 취급하던 무법천지로부터, 최소한의 인간 존엄과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를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흔이 넘은 지금, 신천지예수교회 이만희 총회장의 구속적부심마저 기각됐다는 소식을 접하며 참담한 심정으로 펜을 들었다. 이 사건은 특정 종교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대한민국이 과연 헌법이 보장하는 법치주의와 형사절차의 기본 원칙을 냉정하게 지키고 있는지 묻게 만든다.
우리 헌법 제27조 제4항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구속 결정이 곧 유죄 판결이 아니듯, 검찰의 기소 자체가 범죄 사실을 확정하지는 않는다. 이 원칙은 피고인의 권리이기에 앞서 사법 제도 전체의 공정성을 지탱하는 근거다. 그러나 현재 이 사건을 대하는 여론과 언론의 태도는 이미 확정된 죄인을 대하듯 냉혹하다. 사회적 반감이 형사 절차의 공정성을 압도하는 현 상황은 정상적이라 보기 어렵다.
특히 우려스러운 점은 이만희 총회장의 나이가 만 95세의 초고령자라는 점이다. “걸어 다닐 수 있다”며 구치소 수감도 가능하다고 말하는 한 언론의 보도를 보고 있자니 참담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 나 역시 아흔을 넘긴 몸이라 노환의 고통을 잘 안다. 구금 환경에서 초고령 피의자가 겪을 신체적 위험은 육안으로 구분하거나 법리만으로 따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향후 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진들, 차가운 독방에서 이미 건강을 잃어버린 노병의 삶을 국가가 무슨 수로 보상할 수 있겠는가. 국가가 지급하는 몇 푼의 형사보상금으로는 빼앗긴 시간과 파괴된 신체를 결코 되돌릴 수 없다. 때문에 국제인권기구들도 고령 피의자에 대한 대안적 수사 방식을 권고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미 전방위 압수수색으로 증거가 확보된 상태에서, 거동조차 불편한 구순의 노인을 구금 수사할 정도로 증거 인멸의 위험성이 크다는 논리는 일반인조차 받아들이기 힘들다. 죄가 있다면 법정에서 엄정히 가려 처벌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재판을 시작하기도 전에 여론재판으로 방어권을 박탈하고, 고령의 신체를 구속해 인권을 침해하면서까지 구속을 유지하겠다는 사법부의 판단은 아무리 아량을 베풀고 생각해봐도 과도한 형벌권 남용이다.
자유민주주의를 피로써 지켜낸 학도의용군으로서, 법의 엄정함 못지않게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사법부의 현명한 재고를 촉구한다. 만 95세 초고령자의 신체부터 가두는 성급한 구속을 즉각 철회하고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는 대한민국의 정의로운 결단을 기대한다. 내가 목숨 걸고 지켜낸 이 나라의 정의가 살아있음이 증명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