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일보 인천=김동하 기자】1999년 10월 30일, 인천 인현동의 한 상가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는 57명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갔다. 그 비극의 현장에는 열아홉 살의 꽃다운 나이였던 고(故) 이지혜 씨도 있었다. 그러나 참사 이후 2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이 씨의 이름 앞에는 '희생자' 대신 '종업원'이라는 차가운 주석이 달려 있었다.
지난 26일, 인천 중구의회에서 통과된 「인현동 화재 사고 관련 보상 조례」 일부개정안은 단순히 보상금 몇 푼을 지급하기 위한 행정적 절차가 아니다. 이는 국가와 지자체가 4반세기 동안 방치해온 한 개인의 명예를 회복하고,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정의를 바로잡는 '치유의 선언'이다.
기존 조례는 화재의 원인을 제공한 실화자나 가해자, 건물주와 함께 '종업원'을 보상 제외 대상으로 묶어두었다. 아르바이트생이었던 이 씨는 졸지에 가해자 측과 같은 취급을 받으며 국가의 보호망 밖으로 밀려났다. '법대로'라는 명분 아래 행정은 경직되었고, 유족들은 슬픔을 채 추스르기도 전에 '가해자의 조력자'라는 사회적 낙인과 싸워야 했다.
이번 조례 개정이 갖는 가장 큰 의의는 '사람에 대한 예우'를 회복했다는 점이다. 김정헌 중구청장과 중구의회가 국민권익위원회의 권고를 적극 수용하고, 유가족 및 시민단체와 머리를 맞대어 '종업원' 조항을 삭제한 것은 행정이 나아가야 할 따뜻한 방향성을 보여준다. 또한 '2000년 1월까지 신청해야 한다'는 식의 독소조항을 걷어낸 것은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데 시효가 없음을 증명한 사례다.
하지만 명예 회복은 이제 시작이다. 법적인 근거가 마련됐다고 해서 유족들의 가슴에 박힌 못이 단번에 뽑히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번 사례를 계기 삼아 우리 주변에 또 다른 '보이지 않는 희생자'들이 방치되어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한다. 사회적 참사 이후의 수습 과정에서 행정 편의주의가 한 개인의 인권을 짓밟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안전한 사회는 단순히 소방 시설을 점검하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시민을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고, 그들의 명예를 온전히 지켜줄 때 비로소 시민들은 국가를 신뢰할 수 있다.
25년 만에 비로소 진정한 안식에 들게 된 고(故) 이지혜 씨의 명복을 빈다. 이번 '인천발(發) 정의의 물결'이 우리 사회 곳곳의 억울함을 씻어내는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