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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인 영화암이 전하는 역사의 고개, 피반령… 전쟁의 한을 품다

"밥을 피한 고개, 피를 피할 순 없었다"… 전쟁의 상흔을 품은 피반령

 

【우리일보 김선근 기자】"피반령에는 굶어 죽은 이들의 한뿐만 아니라, 또 다른 핏빛의 한이 서려 있습니다."


영화암은 "충북 보은과 청주를 잇는 피반령은 예로부터 도적떼에게 밥을 빼앗긴 원혼들의 전설로 유명하지만 그 고갯길에 6.25 전쟁의 비극이 깃들어 있다"고 힘줘어 말했다.

 

굶어 죽은 이들의 한이 서린 고갯길


영화암은 "피반령은 오래전 도적떼에 의해 굶어 죽은 사람들의 원혼이 서려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예로부터 이 고개는 도적들이 자주 출몰해 지나가는 이들의 재물은 물론, 밥까지 빼앗아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로 인해 굶어 죽은 이들의 영혼이 구천을 떠돌며, 고개를 지나는 사람들의 밥 냄새를 맡고 달려든다는 믿음이 생겨났다.


영화암은 "그래서 사람들은 이 고개를 넘기 전에는 미리 배를 채우고, 혹시라도 음식을 가지고 갈 경우에는 냄새가 새지 않도록 조심했다"며, "이러한 행위는 단순히 도적을 피하기 위한 것을 넘어, 굶주린 원혼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무속적인 지혜가 담긴 것"이라고 말했다.

 

6.25 전쟁, 고갯길에 남긴 핏빛 기록


영화암은 "6.25 전쟁 당시, 이 고갯길은 수많은 군인들의 피로 물들었다"고 전했다.


이곳은 단순한 고갯길이 아니라, 국군 6사단과 수도사단 제17연대가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역사의 현장이었다.


특히 보은에서 상주로 넘어가는 화령장 전투에서는 수도사단 17연대가 북한군 15사단 45, 48연대를 섬멸하며 북한군의 남하를 일주일이나 지연시켰다.


영화암은 "이 고갯길과 주변 산야에는 수많은 군인들이 쓰러져갔습니다. 적과 아군을 가릴 것 없이 젊은 목숨들이 스러져갔지요. 이들의 영혼은 밥을 잃은 혼령들처럼 구천을 떠돌며 고갯길에 한을 남겼다"면서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밥을 잃어버린 한이 피를 잃어버린 한으로 이어진 것이다.

 

피반령에 깃든 '피', 그리고 위로의 무속


영화암은 무속인들이 왜 이 고개를 중요하게 여기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단순히 전설 속 원혼들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전쟁으로 인해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한 젊은 영혼들, 그들의 한을 달래고 위로하는 것이 무속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피반령은 이름 그대로 '피'가 서린 고갯길이 되었고, 굶주려 죽은 이들의 한을 넘어, 전쟁의 비극으로 희생된 영혼들의 한까지 품고 있는 곳으로 현대인들은 이 고개를 지나며 굶주린 이들의 전설만 기억하지만, 그 이름에 숨겨진 또 다른 슬픈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화암은 "우리 무속인들은 매년 이 고개를 찾아 그들의 영혼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위로하고 있다"며 "후손들이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기억할 때, 이 고갯길은 비로소 평화와 안식을 찾을 수 있을것" 이라고 밝혔다.


이어 "피반령에 깃든 역사의 한을 기억하고, 그들의 영혼을 기리는 것. 그것이 바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