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일보 김지윤 기자】 부산의 근현대사를 상징적으로 품고 있는 영도를 새롭게 조명하는 특별기획전이 열린다. 부산근현대역사관은 18일부터 2026년 3월 2일까지 105일간 2층 기획전시실에서 2025년 특별기획전 ‘부산의 보물섬, 영도’를 개최한다고 17일 밝혔다. 역사관 개관 이후 처음으로 특정 지역에 초점을 맞춘 대형 기획전으로, 영도의 공간과 시간, 사람을 입체적으로 살펴보며 도시 정체성을 다시 묻는 자리다.
영도는 일제강점기에는 군사·산업시설이 집중된 침략 거점이었고, 한국전쟁기에는 전국 각지에서 피란민이 몰려와 삶의 터전을 일군 공간이었다. 이후 조선업 황금기를 거치면서 국내 최대 수리조선 기지로 성장했지만, 산업 구조 변화로 쇠퇴의 아픔도 겪었다. 최근에는 이러한 역사를 바탕으로 문화·예술·관광이 어우러진 새로운 섬으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전시는 이러한 변화의 과정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 보여주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전시는 크게 세 개의 축으로 구성된다. 1부 ‘절영도를 찾아서’는 영도의 옛 이름 ‘절영도’의 유래와 봉래산과 태종대 등 대표 자연경관, 도선과 영도대교 등 교통수단 변화를 통해 섬의 지리적 특성이 어떻게 공간 구조와 생활 방식을 규정해 왔는지 살핀다. 2부 ‘물길을 건너’에서는 개항 이후 일본인의 이주와 식민지화 과정, 일제강점기 군사·산업시설 설치, 피란수도 시절 전쟁을 피해 내려온 이들의 삶, 조선업 호황기에 형성된 노동과 주거 환경 등을 조명한다.
3부 ‘닻을 내리다’는 바다를 배경으로 형성된 영도의 생업과 오늘날 문화의 섬으로 자리 잡은 모습을 다룬다. 수리조선소 노동자, 해녀, 상인, 주민 등 다양한 이들의 인터뷰 영상과 구술 자료가 함께 전시돼 통계나 문서만으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생활의 온기를 더한다. 영도의 골목과 포구, 마을 풍경이 주민들의 기억 속에서 어떻게 이어지는지도 심상지도와 사진 아카이브를 통해 보여준다.
전시에는 전국 11개 기관과 개인 소장 유물 164점이 출품된다. 동래부사 권이진이 태종대에서 기우제를 올릴 때 사용한 축문, 봉래산 정상에서 발견된 쇠말뚝, 영선 피란학교 학생의 일기장, 수리조선 관련 공로 상패 등 희귀 자료가 공개된다. 부산시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변관식 필 ‘영도교’, 고희동 필 ‘영도해안’ 등 회화 작품과 함께, 영도 출신 가수 최백호가 그린 ‘포트 오브 대평동(Port of Daepyeong)’, 그림작가 이영아의 그림책 ‘깡깡깡’ 원화도 전시돼 예술가의 시선으로 담아낸 영도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시민 참여형 전시 구성도 눈에 띈다. 역사관 별관 프로그램 ‘장소로 기억하는 당신의 부산’을 통해 영도 주민들이 직접 그린 심상지도가 전시장에 함께 소개된다. 주민들이 기억하는 골목길, 가게, 집, 바다 등이 손으로 그린 지도 위에 펼쳐져, 공식 지도에서는 볼 수 없는 ‘기억의 영도’를 보여준다. 관람객들은 이를 통해 도시가 단순한 지리 공간을 넘어 기억과 감정이 겹겹이 쌓인 장소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체감할 수 있다.
전시는 ‘보고 끝나는’ 형식을 넘어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도 준비했다. 11월과 12월에는 전시를 기획한 학예연구사가 직접 설명하는 ‘큐레이터와의 대화’가 두 차례 열리고, 12월 5일에는 ‘영도의 산업과 문화’를 주제로 한 학술세미나가 개최된다. 학계와 현장 전문가들이 영도의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다양한 시각에서 논의하며, 영도와 부산의 미래 상을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될 전망이다. 모든 프로그램은 사전 신청을 통해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김기용 부산근현대역사관장은 “영도는 부산의 근현대사를 상징적으로 담고 있는 섬이자, 역사와 문화가 함께 숨 쉬는 특별한 공간”이라며 “이번 전시가 시민 여러분이 영도를 새롭게 바라보고, 과거의 기억을 현재와 연결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영도의 이야기를 통해 부산이라는 도시 전체의 정체성과 기억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