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일보 김선근 기자】한국 사찰의 뒤편, 가장 높은 지점에 소박하게 자리한 작은 전각 하나. 법당보다 작고 장식도 화려하지 않지만, 수백 년 동안 이 땅의 기운을 지켜온 보이지 않는 심장, 산신각이다.
산신각은 불교의 곁가지로 오해받곤 하지만, 한국 토속 신앙과 사찰 문화가 만나는 지점이자 우리 민족이 지켜온 신령한 전통의 본류로 평가된다.
산신각의 참된 의미와 전통 보존의 가치를 듣기 위해 사단법인 산신각 보존회를 이끌고 있는 백호만신당을 만났다.
백호만신당은 산신각의 가치에 대해 “산신각은 이 땅의 영적 중심입니다. 절에 부처님을 모신다 해도, 먼저 이 산의 주인인 산신령님께 허락을 구하는 것이 예부터의 법도였습니다. 산신각은 한국인의 영혼이 깃든 본궁(本宮)과도 같습니다”라고 말하며 인터뷰를 열었다.
그는 산신 신앙의 유래를 묻자 “불교보다 먼저 이 땅에 자리 잡은 것이 산신 신앙입니다. 민족의 역사와 함께 이어져 내려온 자연 숭배의 정수이자 가장 오래된 토착 신앙입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단군 신화에 담긴 ‘산의 신성성’을 강조하며 “무속에서는 단군 할아버지를 산신의 원형으로 봅니다. 하늘의 뜻이 산을 통해 내려왔다는 개념은 곧 산신 신앙의 뿌리이며, 이는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까지 이어진 신앙 구조와 맞닿아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산신각의 탱화 속에 등장하는 상징에 대해 백호만신당은 더욱 구체적인 해석을 내놓았다.
그는 “백호는 산신령님의 권능 그 자체입니다. 산중의 모든 잡귀를 물리치는 수호의 상징이죠. 산신각의 기도는 바로 이 백호의 기운을 받아 재수와 용맹을 얻는 기도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흰 수염의 노인 모습의 산신은 장수와 복록을 관장합니다. 반면 여성 산신은 가정의 평안과 자손의 번창을 빌어주는 어머니 신(神)으로 등장합니다. 탱화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산신의 성격과 역할을 그대로 드러내는 영적 지도라 할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산신각을 찾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 그는 “산신각의 기도는 기복의 으뜸이라고들 합니다. 이 땅을 지키는 가장 오래된 신에게 올리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사업을 하는 분들, 시험을 앞둔 자녀를 둔 가정들이 많이 오죠. 산신 기도는 실제 생활의 안녕, 건강, 재물처럼 가장 현실적인 문제를 다룹니다. 영험함이 빠른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산신 신앙이 사찰과 결합한 역사적 과정도 백호만신당은 명확히 짚었다.
그는 “불교는 외래 종교였습니다. 절을 세우려면 그 산의 주인인 산신령님의 허락이 필요했고, 그런 의미에서 산신각은 단순한 부속 전각이 아니라 불교와 토속 신앙의 합의 지점입니다. 그래서 영험한 절일수록 산신각이 더 공들여 모셔져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산신각을 보전하는 활동에 대해 묻자 그는 목소리를 낮추며 현실적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많은 산신각이 크기가 작고 외진 곳에 있다 보니 훼손되거나 방치되는 사례가 많습니다. 그래서 산신각보존회가 필요했습니다. 산신각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기운이 머무는 곳입니다. 제대로 정화하고 보존해야 그 영험함이 끊기지 않습니다.”
백호만신당은 보존회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 “전통 의례의 전문성, 신앙의 공신력, 그리고 문화유산을 지켜내는 집단의 의미를 함께 담고자 합니다. 산신대제 같은 큰 의례는 정확한 절차와 도법을 알고 있어야 복원할 수 있습니다. 개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단체가 나서서 문화적 토대를 남기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인터뷰 말미, 그는 산신각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짚었다.
“산신각은 한국인의 영혼의 안식처입니다. 수천 년을 이어온 토속 신앙을 그대로 품고 있고, 불교와 함께 한국 종교문화의 뿌리를 지탱해온 신령한 공간입니다. 산신각을 찾아 예를 올린다는 것은 곧 이 땅의 기운과 조화를 맺는 행위입니다. 산신의 가호를 얻고자 한다면, 먼저 경외하는 마음부터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백호만신당의 말처럼 산신각은 단순히 사찰 뒤편의 작은 전각이 아니다.
자연과 인간, 전통과 현대, 무속과 불교가 만나는 한국적 종교문화의 살아 있는 증언이자, 우리 민족의 신령한 뿌리를 담아낸 공간이다.
오늘도 산신각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는다.
그곳에서 바라는 기도는 시대가 달라져도 여전히 단순하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가장 근본적인 복을 구하는 마음이 바로 그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