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일보 서울=강수선 기자】2024년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결코 용인될 수 없는 중대한 국가 폭력이었다. 권력자가 자신의 정치적 안위를 위해 군을 동원하여 국회를 유린한 그날의 상처는 지금도 국민의 가슴 속에 깊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 무도한 권력이 초래한 혼란을 감내하고 헌정 질서를 지켜낸 주체는 정치권이 아니라, 혹한의 광장에서 촛불과 함성으로 민주주의를 수호한 주권자 국민이었다.
국민은 탄핵 광장의 힘을 통해, 1987년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가 어렵게 축적해 온 민주주의의 가치가 결코 단 한 사람의 통치 권력에 의해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실천으로 증명하였다. 이는 1인 중심, 1당 중심의 전근대적 통치 방식이 더 이상 대한민국에서 용납될 수 없다는 엄중한 심판이었다.
이후 치러진 조기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당선된 배경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것은 권력의 사유화를 경계하고, 사회적 약자의 권리와 존엄을 존중하는 인권 정치, 민주 정치를 구현하라는 국민의 명령이었다. 이재명 정부가 스스로를 ‘국민주권정부’라 명명하며 출범한 이유 또한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응답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의 초기 인선은 국민에게 깊은 실망을 안겨주었다. 이른바 ‘친명’으로 분류되는 측근 중심의 인사는 국민주권정부라는 이름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특히 강선우 의원의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낙마 사태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친명계 핵심 인사인 김병기 당대표를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과, 강선우 의원이 연루된 공천 개입 의혹은 이들이 공적 권력을 사적으로 행사해 온 것은 아닌지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여론의 비판에 떠밀려 이루어진 김병기 대표의 사퇴와 강선우 의원의 탈당 선언은 사법적 판단을 앞둔 상황에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궁색한 대응에 불과하다. 이들은 더 이상 주권자를 대표할 자격이 없으며, 즉각 국회의원직에서 사퇴해야 마땅하다.
이재명 대통령 또한 이번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가상자산 논란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김남국 전 의원을 디지털소통비서관으로 임명한 데 이어, 인사 청탁 의혹으로 결국 사직에 이르게 한 일련의 인사 실패는 측근 정치의 폐해를 여실히 드러낸다.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재임 시절부터 함께해 온 측근 인사들이 각종 범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제 대통령은 결연한 자세로 측근 정치를 청산하고, 비리와 권력 남용으로부터 자유로운 국정 운영을 하겠다는 약속을 국민 앞에 분명히 밝혀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의 근본적인 혁신 역시 시급하다. 장경태 의원이 성추행 사건으로 피소된 이후 피해자에게 가한 2차 가해는 차마 묵과할 수 없는 수준이었음에도, 민주당은 이를 사실상 방관하며 윤리감찰단 구성이라는 형식적 조치로 시간을 허비했다. 탄핵 광장에 큰 빚을 지고 있음에도 지난 한 해 동안 민주당이 보여준 모습은 ‘국민주권’이라는 이름과는 거리가 먼 오만과 독선에 다름 아니었다. 전면적인 자기 성찰과 구조적 혁신 없이는 다시금 국민의 준엄한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정부 여당을 견제해야 할 국민의힘 역시 비판 기능을 상실한 채 정치적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자당 출신 대통령이 자행한 비상계엄이라는 반헌법적 폭거에 대해 통렬한 반성과 책임 있는 사과를 해야 함에도, 장동혁 당대표는 오히려 윤석열 전 대통령을 옹호하며 국민의 분노를 키우고 있다. 여당 시절 무능했던 모습은 야당이 된 이후에도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음을 스스로 입증했을 뿐이다.
비상계엄이라는 폭력의 순간 속에서도 민주주의와 인권, 평등의 가치를 끝내 지켜낸 것은 성평등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시민들이었다. 이제 2026년이 밝았다. 우리는 폭력 정치의 어둠을 간신히 통과해 온 2025년에 머무르지 않고,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과거의 낡은 권력 문법에 집착하는 정치 세력은 시대의 도태를 피할 수 없을 것이며, 과거를 변명 삼아 현재의 부패에 안주하는 세력 또한 국민의 신뢰를 잃을 것이다. 국가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주권은 평등한 인권 위에서 비로소 실현된다는 민주주의의 상식을 다시 정치의 중심에 세워야 한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다가오는 2026년 지방선거를 성평등 주민자치가 실질적으로 구현되는 전환점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중앙 정치의 권력 다툼을 넘어, 지역 곳곳에서 여성의 정치 참여와 대표성이 확대되고, 성평등의 가치가 주민자치의 기본 원리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주권자 시민과 함께 행동할 것이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2026년, 성평등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그날까지 주권자 시민과 함께 단호하고도 끈질기게 전진할 것을 다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