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일보 인천=이진희 기자】서해 최북단 백령도 내 레미콘 업체들이 법에서 정한 전문 품질관리자를 상근 배치하지 않은 채 제품을 생산·공급해 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도서 지역 건설 현장의 안전 관리 실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레미콘은 건축물의 구조적 안전을 좌우하는 핵심 자재로, 품질 관리 부실은 주민 생명과 직결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인천시와 관련 기관에 따르면, 인천시 옹진군 백령면에 위치한 K레미콘 업체는 전문 품질관리자를 상근 배치하지 않은 상태에서 레미콘을 생산·가동하다 적발돼 국가표준(KS) 인증 정지 처분을 받았다. 해당 업체의 KS 인증 정지 기간은 오는 1월 30일까지다.
레미콘 품질 관리는 「산업표준화법」과 이에 따른 「KS 인증 심사 기준」에 따라 엄격히 규정돼 있다. 산업표준화법은 KS 인증을 받은 제품에 대해 인증 기준을 지속적으로 충족해야 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으며, 레미콘의 경우 생산 공정 전반에 대한 품질관리 체계와 전문 인력 확보를 핵심 요건으로 명시하고 있다.
특히 KS 인증을 받은 레미콘 제조업체는 자격을 갖춘 품질관리자를 상근으로 배치해 원재료 관리, 배합 설계, 생산 과정, 출하 전 품질 시험 등을 상시 점검해야 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KS 인증 정지 또는 취소 처분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또한 「건설기술진흥법」과 국토교통부 고시에 따른 「건설공사 품질관리 업무지침」 역시 건설 자재의 품질 확보 책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해당 지침은 레미콘을 포함한 주요 건설 자재에 대해 제조 단계부터 현장 반입, 타설까지 전 과정에 걸친 품질 관리를 요구하고 있으며, 품질 기준 미달 자재 사용 시 공사 중지 및 재시공 조치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 백령도에는 총 3개의 레미콘 업체가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도서 지역이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전문 품질관리자 인력 수급이 쉽지 않아, 한 명의 관리자가 두 개 업체를 오가며 근무하는 이른바 ‘돌려막기’식 운영이 이뤄져 왔다는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 일부 업체의 경우 품질관리자가 아예 상주하지 않는 상태로 가동됐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운영 방식은 KS 인증 기준상 허용되지 않는다. KS 인증 심사 기준은 품질관리자의 실질적 상근과 현장 관리 능력을 중점 평가 항목으로 두고 있으며, 서류상 배치나 형식적인 인력 등록은 인증 유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인천시 관계자는 “품질관리자 상주 여부는 KS 인증 유지의 핵심 요건”이라며 “현장 점검 결과 이를 충족하지 못한 사실이 확인돼 인증 정지 처분을 내렸다”고 밝혔다.
레미콘은 배합 비율, 기온, 습도, 양생 조건 등에 따라 강도 편차가 크게 발생하는 자재다. 이 때문에 품질관리자의 실시간 관리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설계 기준 강도를 충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
전문가들은 품질관리자 부재 상태에서 생산된 레미콘이 실제 건설 현장에 타설됐다면, 향후 구조적 안전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건설기술진흥법」은 발주자와 시공자에게 부적합 자재 사용을 방지할 책임을 부여하고 있으며, 문제가 발생할 경우 책임 소재가 복잡해질 수 있다.
이번 사태 이후 백령도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KS 인증 정지 이전과 이후에 타설된 콘크리트 구조물에 대해 강도 시험 등 전수 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백령도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섬이라는 이유로 관리가 느슨했던 건 아닌지 걱정된다”며 “법에서 정한 기준대로 제대로 점검이 이뤄졌는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례를 두고 육지와 떨어진 도서 지역이라는 이유로 관계 당국의 지도·점검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KS 인증 사후 관리는 정기·수시 점검을 통해 이뤄지도록 돼 있으나, 접근성이 떨어진 지역일수록 점검 빈도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다.
전문가들은 도서 지역 건설 현장일수록 오히려 관리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건설 안전 전문가는 “법과 제도는 전국 어디든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며 “접근성이 떨어진 지역일수록 사고 발생 시 대응이 어렵기 때문에 사전 관리가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관련기관에서는 KS 인증 정지 기간이 종료되는 오는 1월 30일 이후, 해당 업체들이 실제로 적격 품질관리자를 상근 배치했는지 여부를 다시 점검할 계획이다. 형식적인 인력 충원이나 이른바 ‘유령 관리자’ 운영이 확인될 경우 추가 행정 처분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백령도 레미콘 품질관리자 부재 사태는 단순한 행정 위반을 넘어, 도서 지역 건설 안전 관리 시스템 전반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과제를 드러냈다. 법과 제도가 규정한 최소한의 안전 기준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