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일보 김선근 기자】윤석열 정부 들어 노동위원회의 ‘직권조사’가 급감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당해고·부당노동행위 등 노동자 권리 구제의 핵심 기능이 사실상 위축된 가운데, 김태기 중앙노동위원장 취임 이후 현장조사 비율이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용우 의원(더불어민주당, 전남 고흥·보성·장흥·강진)이 고용노동부와 중앙노동위원회(이하 중노위)로부터 제출받은 노동위원회 연도별 직권조사 현황 자료에 따르면, 노동위원회가 직권으로 조사에 나선 비율은 지난 2023년 44.0%에서 지난해 32.2%로 27% 감소했다.
지난해 노동위에 접수된 사건은 2만 3963건으로 전년(2만 1407건)보다 늘었지만, 직권조사는 9426건에서 7713건으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직권조사 중에서도 실제 사업장을 찾아가 실태를 확인하는 현장조사는 지난 2023년 1469회에서 지난해 829회로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노동위원회 조사관 1인당 사건 처리 건수도 80.8건(지난 2023년)에서 84.7건(지난해)으로 소폭 증가에 그쳐, 사건 증가를 이유로 조사 감소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현행 노동위원회법은 노동위원회 위원과 조사관이 부당해고 사건 등에서 사용자가 보유한 자료를 요구할 수 있는 ‘직권조사권’을 명시하고 있다.
이는 노동자 측이 스스로 입증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제도다.
노동위는 문재인 정부 시절인 지난 2020년 노동위원회 발전방안, 2022년 심판 혁신방안을 수립하며 직권조사 활성화를 추진해왔다.
이에 따라 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 평가에서 직권조사 배점을 10점에서 15점으로 상향하고, 복잡한 사건에는 가급적 현장조사를 의무화하도록 지침을 마련했다.
그 결과 지난 2020년 9.8%였던 직권조사 비율은 2022년 54.4%까지 상승했으며, 현장조사 비율도 같은 기간 1.05%에서 7.63%로 6배 이상 늘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2년 11월 김태기 위원장을 임명한 이후부터 이 같은 기조가 급격히 후퇴했다.
김 위원장은 취임 4개월 만인 2023년 4월, 지노위 기관평가에서 직권조사 배점을 절반(15점→7점)으로 축소했다.
반면 ‘ADR(대안적 분쟁해결제도)’ 관련 항목을 신설하고 ‘새로운 분쟁해결 모델 발굴 및 확산’(2점 신설), ‘화해·중재·취하율’(9점→15점) 항목의 비중을 높였다.
이후 지난해에도 ADR 관련 배점을 다시 상향하는 등 노동위원회의 핵심 기능인 심판 역할보다 ‘분쟁조정’ 중심으로 조직의 무게추를 옮긴 것으로 평가된다.
김 위원장은 최근 자신의 저서 ADR 대안적 분쟁해결제도를 출간하며 관련 홍보 활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용우 의원은 “ADR에 중노위의 역량을 집중하느라 정작 부당해고와 부당노동행위 구제를 위한 직권조사가 뒷전으로 밀린 현실이 수치로 드러났다”며 “노동위원회 본연의 기능은 조정이 아니라 심판이다.
중노위는 직권조사와 현장조사를 강화하도록 즉시 내부 평가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동계 관계자들 역시 “직권조사는 노동자가 사용자와 맞서기 위해 최소한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제도인데, 이 기능이 약화되면 노동위가 실질적 구제기관이 아니라 행정 중재기관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